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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어리/일상생각

내가 오른 산

by 88라이더 2024. 11. 11.

 

겨울 한라산

 

어릴 적 나의 부모님은 주말마다 등산을 가셨다.
일요일 아침이면 산에 가자며 자고 있는 나를 깨웠다.
그 힘든 걸 왜 하는 거냐며, 나는 도망 다니기 일쑤였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부모님은 등산을 접고 캠핑으로 돌아섰다.
이유는 관절이 산을 더 오르도록 허락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의 30대는 고민이 많았다.
지금 생각해 보면 다 쓸데없는 고민이다.
직업은 미래가 없고, 나는 하루살이처럼 살아가고 있었다.
무언가 하고 싶은 것은 없었지만 나아가고픈 욕심만 가득했다.
나는 그렇게 일상이 답답해지면 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등산을 하면 몸이 힘들어서 아무 생각도 들지 않았다.
숨은 차고, 땀범벅에 다리는 후들거린다.
그렇게 오르다 정상에서 맞는 바람은
고민을 조금 가볍게 만들기도 하고,
내려오는 동안 생각이 좀 쉽게 정리되기도 했다.  

그렇게 한 번씩 오르기 시작한 산,
가벼운 동네 산을 시작으로
북한산, 설악산, 속리산, 한라산, 주왕산, 덕유산 등등
국립공원으로 지정된 산들을 도장 깨기 하듯 오르기 시작했다.
마지막으로 오른 산은 지리산이다.
영하 20도의 겨울산을 제대로 준비도 못하고 올랐다.
가장 힘들었고, 체력의 한계를 느꼈지만 결국엔 천왕봉을 만났다.
그렇게 10시간이 넘는 산행을 할 때면
‘그래, 뭐라도 할 수 있는 능력이 아직 남아있다.’라는
위안을 얻는다.

지리산을 끝으로 나도 의사 선생님께 ‘산 금지’라는 처방을 받았다.
나의 무릎이 더 이상 버텨주지 못한다고 한다.
몇 년째 산을 오르고 싶은 마음을 꾹 참다가
나는 다시 한번, 마지막으로 산을 오르려고 한다.

체력을 기르고, 무릎에 무리가 가지 않게 늘어난 체중을 감량하고,
좋아하는 사람들과 겨울 한라산을 다시 한번 만나기로 했다.

지금 나에게 포기하지 않고 나아가라는 위로가 간절히 필요하다.

어차피 내려올 산을 왜 오르냐고
사람들은 종종 물어본다.
그럼 너무 뻔한 대답이지만
‘올라가 보면 안다.’라고 한다.
사실 정상에서 내려다보는 풍경은 어떤 산이든
그 벅차오름을 감동으로 선물해 준다.

마음이 답답하고, 지금하고 있는 일이 뜻대로 되지 않을 때
산에 한번 오르길.
거기서 강한 나와 마주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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