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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담화

직장담화 # 3. 내맘대로 룰

by 88라이더 2024. 11. 10.


캐디를 처음 시작했을 때 가장 먼저 배우는 것은
골프 용어와 룰이다.
아마추어들은 오랫동안 골프를 해 왔다고 해서 룰을 정확하게 알지는 못한다.
새롭게 개선된 룰도 있어서 캐디도 몇 년에 한 번씩은 자신이 알고 있는 룰을 재정비하기도 한다.

그런데 대중 골프장을 찾는 대부분의 골퍼들은
캐디 말도 안 들으면서 자기 마음대로다.

볼 터치하며 라이 개선은 시도 때도 없이 일어나는 일이고,
플레이할 수 없는 OB 구역에 있는 것도 볼만 찾으면 무벌이라며
자신만의 룰을 만든다.

버젓이 OB 말뚝을 넘어 가 찾기도 힘든 곳으로 올라갔는데도
찾으면 무벌이라는 자신들의 룰 때문에 진행 지연은 아랑곳없이
볼 찾기에 여념이 없다.
그런 걸 보고 있자면
‘내가 여기서 뭐 하고 있나...’ 하는 일에 회의가 들기도 한다.

저런 사람이 어디 있어? 하고 되묻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수두룩하게 봤다.

그렇게 골프를 치면 재미있을까?

오래전에 만난 고객님 중에 이런 사람이 있었다.

캐디는 팀을 배정받으면 카트에 백을 싣고 클럽을 체크한다.
그리고 고객과 마주 했을 때 좀 더 빠른 서브를 위해서
클럽 비거리나 어프로치는 주로 어떤 클럽을 쓰는지 미리 물어보곤 한다.

어느 날 한 고객님께
“어프로치는 주로 어떤 걸 쓰시나요?” 하고 물었다.
답은
“아, 저기 내가 미국에서 골프를 배우고 한국에서는 잘 안쳐봐서...”
나는 다시 물었다.
“아 ~ 네,  그래서 그린 주변에서는 어떤 클럽을 쓰시는데요?”라고
다시 물었다.
고객은
“아~~ 샌드, 샌드 써요.”
그렇게 말하는 것이다.
처음부터 뭔가 이상하다 싶었는데.
플레이를 하는 도중 OB가 났다. 말뚝을 벗어났지만 볼을 찾을 수 있는 곳에 있었다.

그래서 OBT 가 있으니 거기서 플레이하시면 된다고 안내를 했는데
갑자기 거기서 치겠다고 하는 것이다.

“고객님, 거기는 OB 구역입니다. 특설티 이용하세요.”라고 했더니
“살아있는데 왜 OB 에요?”라고 동문서답을 하는 것이다.
그러면서 또 본인이 미국에서 골프를 배워서 그렇다는 얘기를 하는 것이다.
너무 어이가 없어서
“그래서 미국 룰은 뭔데요?” 라도 되물은 적이 있었다.

골프는 국제룰을 쓰고, 골프장 사정에 따라 로컬룰을 우선 적용한다.
대회가 아닌 이상 골프장은 영업에 유리한 운영을 하기 위해서 로컬룰을 만들 수밖에 없다.
그래도 기본적인 것은 국제룰을 따르고 있는데
미국에서 배운 거랑 무슨 상관인지 정말 어이가 없었다.

예전에 할아버지들이 티마크 보다 한 발 앞에 티를 꼽을 수 있다고 우겼던 적이 있는데
도대체 그런 말도 안 되는 룰은 어디서 듣고 배워 오는지 정말 궁금하다.

이제 막 골프를 시작하는 사람이라면 룰 공부는 제대로 하고 왔으면 좋겠다.
프로 경기를 보면서 룰을 공부하는 건 쉽지가 않다.
왜냐면 프로들은 룰을 따져야 하는 상황이 잘 생기지 않기 때문이다.
대부분 페어웨이로 티샷을 보내고, 세컨도 온그린 아니면 그린 근처에 있기 때문이다.
또 골프장은 대회 몇 주 전부터 대회에 맞는 코스 설비를 하기 때문에
일반 대중 골퍼들이 겪는 상황을 접할 수 없다.

고객들은 재미로 내기 골프를 하는데
그럴 때면 캐디에게 PGA 룰을 적용해 달라고 신신당부하면서
결국엔 자기들 편한 대로 말을 바꾸곤 한다.

어차피 ‘가짜 스코어’인데 무슨 의미가 있을까.
제대로 된 플레이를 하지도 않으면서 싱글 플레이니, 라이프 베스트니 할 때는
그저 허탈한 웃음만 나온다.

물론 골프에 진심인 고객들도 있다.
매너도 좋고, 캐디가 하는 설명도 귀 기울여 준다.
그렇게 찐으로 베스트 스코어를 내면 덩달아 기쁘기도 했다.

이왕 골프를 치기로 했다면
제대로 된 룰을 지키고, 다른 팀에게 방해되지 않도록 지연플레이는 지양하길 바란다.
내기도 좋지만 안전이 우선이고, 목숨 거는 운동은 안 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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