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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담화

직장담화 # 15. 직업으로서의 캐디

by 88라이더 2024. 11. 26.

 

 

캐디라는 직업은 정말 어려운 일이다. 

어쩌면 가장 많은 감각을 사용하는 일일 수도 있겠다. 

또 그 감각을 단독으로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멀티가 되어야 한다. 

처음 캐디를 할 때 그런 감각들이 하나씩 깨어나서 신기했었다. 

 

내가 처음 캐디를 했던 곳은 안개가 자주 끼는 곳이었는데

새벽에 일을 나가면 공이 안 보여서 

공이 떨어지는 소리로 어디쯤 갔는지 파악하곤 했다.

그리고 공이 클럽에 맞는 소리만 가지고도 

클럽 페이스의 어느 부분에 맞았는지까지 구분했다. 

감각도 집중해서 사용하면 발전이 가능하다는 걸 깨닫기도 했다.

 

캐디의 기본은 볼을 보는 것이다. 

볼부터 봐야 그 다음 일이 가능하다. 

처음엔 시력이 점점 나빠지는 걸 느꼈다. 

아무래도 태양을 정면으로 보거나 작은 볼을 끝까지 

집중해서 보다보니 눈에 피로도가 높아질 수밖에 없다. 

그래서 일을 시작한지 얼마 후부터 눈 관리를 했다. 

안구마사지, 안구세척은 기본이고, 조금만 충혈이 되어도 안과를 찾았다.

눈 건강에 좋은 보조제도 먹었다. 

그렇게 했더니 시력은 점점 더 좋아지고,

40대가 되어서도 1.5 이하로 떨어진 적이 없다. 

볼을 잘 보는 것은 나에게 큰 매리트가 되었다. 

 

입으로는 고객에게 거리를 불러주고, 눈으로는 볼을 보고

코스 내, 혹은 경기과 무전을 수시로 듣고,

플레이어 네 명의 스코어까지 봐야 한다. 

게다가 고객님들이 하고 있는 이야기도 틈틈이 들어서 

분위기 파악도 해야 하고, 혹여 위험한 상황이 발생하지 않도록

시선을 떼지도 말아야 한다.

 

집중력을 최고로 끌어올려야 하는 직업. 

거기에 감정 쓰레기통으로 쓰여

멘털관리까지 해야 하니 이 직업을 좋아하는 사람이 흔치 않은 건

어쩌면 당연한 결과라고 해야 할까.

 

고객들이 오면 쉽게 하는 얘기가

"매일 이렇게 좋은 공기 마시면서 일하면 좋겠다."이다.

그런데 과연 그럴까?

필드에 나오는 골퍼들 중 10에 7팀은 흡연자다.

어쩔 때는 폐가 쓰라린 느낌을 받을 때도 있다. 

 

날씨가 좋지 않은 날에 하는 말은

"우리는 돈 쓰면서 비 맞고, 눈 맞는데 

캐디는 돈 버니까 좋겠다."이다.

캐디 중 누구도 비 맞고 일하고 싶은 사람은 없다. 

캐디님 돈 벌라고 할 수 없이 라운딩 한다는 식의 표현은 안 했으면 좋겠다.

 

어떤 직업이든 귀천은 없다. 

골프는 취미로 하기엔 돈이 많이 드는 스포츠인 건 맞다. 

그러니 아무래도 사회적 위치가 어느 정도 상위권에 있는 사람이 

내장객으로 올 수밖에 없다.

그들에게 캐디는 사회적으로 하위권에 있는 직업군이라는

인식이 강하다. 

그래서 처음 대면할 때부터 반말을 하는 사람이 많은 것일 수도 있다. 

 

 

캐디는 출퇴근 시간이 일정하지 않다. 

본인이 나가는 티오프 시간에 따라 매일매일 출근을 달리한다. 

보통 티오프 한 시간 전에 출근을 하기 때문에 

기상은 그보다 한 시간 반 전에 한다. 

만약 내가 6시 티오프라면  3시 반에 일어나서 준비하고

5시까지 출근을 해야 한다. 그런 날은 두 번 근무를 하기 때문에

거의 12시간은 회사에 있다. 

시즌 때는 이 패턴을 계속 반복한다. 

그래서 체력적으로 많이 힘들다. 거기에 진상 골퍼까지 만나면

정신적인 스트레스는 극에 달한다. 

 

20년 전에는 암암리에 아는 사람들만 캐디를 했다. 

부모님들의 인식이 좋지 않아 반대도 심했다. 

하지만 골프라는 스포츠가 대중화가 되면서 

다양한 연령대가 즐기다 보니 직업에 대한 관심도도 높아졌다.

관심이 높다 보면 많이 찾을 것 같지만 오히려 그 반대다.

그 힘듦을 알기 때문에 쉽게 시작하는 사람도 없을뿐더러

시작했다가도 얼마 지나지 않아 그만두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지금은 신입 구하기가 힘든 직업이다. 

신입 교육도 마찬가지다. 회사가 교육을 해 줄 것 같지만 

'동반'이라는 제도로 기존 캐디가 신입 캐디를 가르친다. 

이렇게 계속되다가 사라지게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종종 노캐디로 운영을 하는 골프장 소식도 들려왔기 때문이다. 

 

내 생각은 캐디가 없다면 골퍼가 온전히 골프에 집중할 수 없다고 본다.

나도 노캐디 골프장에서 라운딩을 해봤는데

카트 운전도 신경 써야 하고, 순간 볼을 놓치면 어디로 갔는지 난감하기도 했다. 

고객들 중에도 셀프로 하는 노캐디 골프장에 갔다가 

다시는 노캐디 라운딩은 안 한다는 사람도 있었다. 

분명 그분은 리모컨을 들고 카트를 컨트롤했을게 분명하다. 

자기 볼은 못 치고 동반자들을 신경 썼을 것이다.

 

이 직업이 존중받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 

골퍼들의 기분에 따라 쉽게 체인 해서 생계를 위협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감정으로 사람을 난도질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골프가 즐거웠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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