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처음 캐디를 시작했을 때
내가 다니던 회사는 남자 캐디가 한 명도 없었다.
그때는 투어 프로들 캐디만 남자였지(캐디백을 메야했음)
골프 클럽에 일하고 있는 캐디는 대부분 여자였다.
현재는 남자 캐디 비중이 엄청 높아졌고,
전 직장에서는 남여 비율이 6:4 정도였다.
물론 남자는 대부분 3부(야간)캐디지만
하우스(1,2부)에도 꽤 있었다.
남자 캐디가 많아진 것이 3부를 운영하거나 운전캐디를
쓰기 시작하면서 부터인지,
혹은 캐디라는 직업이 힘들기 때문에
여자캐디를 지원하는 사람이 줄어들었기 때문인지 알 수 없으나
확실히 남자 캐디가 많아진 건 사실이다.
캐디가 남자건 여자건 하는 일은 똑같다.
헌데 아직도 이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고객들이 많다.
남성 골퍼들은 남자 캐디가 나오면 인사도 하기 전에 인상부터 쓴다.
남자 캐디가 나오면 볼이 안맞는다느니, 재수가 없다느니 하면서
시비부터 걸거나, 지난번 한 동료는 시작전에 어프로치 뭐 쓰는지 여쭤봤다가
체인을 당했다. 정말 어이없는 일이다.
하지만 남자 캐디들의 이런 묻지마 체인은 빈번하게 일어난다.
그래서 어떤 골프장은
꼭 여성 고객이 있어야만 남자 캐디를 배치하는 경우도 있었다.
아무 이유없이 컴플레인과 체인을 당하다 보니 골프장에서도 방법을 찾은 것이다.
그런데 만약 여성 고객이 내장하지 않으면 내장할 때까지 대기가 뒤로 밀려
출근 시간 한참 뒤에야 근무를 나가는 불이익을 당하기도 한다고 했다.
나는 중성적인 이름을 가졌다.
카트에 내 이름을 보고 남자캐디라고 오해하는 고객님이 종종 있었다.
그러다 내가 나오면 이름 보고 남자캐디인 줄 알았는데
여자 캐디라서 다행이라는 말을 들은 적이 아주 많다.
그러면서 전에 나간 남자캐디 욕을 그렇게 해대는 것이다.
굉장히 불쾌하지만 감정 상하면서 시작할 수는 없으니 나도 그냥 참고 넘어가기 일쑤였다.
같이 일했던 남자 캐디의 고충을 듣다보면 한숨이 절로 나왔다.
못된 고객들이 그만큼 많다는 거다.
골프보단 잿밥에 관심이 있는 거나 마찬가지다.
그런 고객들은 꼭 음담패설을 입에 달고 살거나 음흉한 눈빛으로
사람을 아래위로 훑어 보곤한다.
예전에 모 국회의원이 캐디 성추행 건으로 뉴스에 크게 난 적이 있었다.
수면에 올라온게 몇 개 없어서 그렇지 그런 일은 비일비재하다.
또 골프 용어를 성적으로 빗대어 사용하는 사람도 많았고
대놓고 적나라한 야설을 내뱉는 사람도 있다.
지금은 없을 것 같지만 여전히 그런 더러운 고객은 존재한다.
남자캐디와 여자캐디를 구분하는 사람들은 분명 머릿속에 그런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다.
캐디는 그냥 캐디일 뿐이다. 골퍼들의 실력향상에 도움을 줄 어드바이스를 하는 역할이다.
남자 캐디를 보자 마자 맘에 들지 않는다는 생각이 드는 것부터가
성적 대상으로 바라봤다는 의미로 밖에 여겨지지 않는다.
어떤 고객은 체인은 하지 않아도 남자캐디란 이유만으로 엄청 부려 먹는다.
찾기 힘든 곳으로 넘어간 볼을 끝까지 찾아오라고 닦달하거나
보자마자 반말부터 하기도 한다.
또 이런 일도 있었다.
우리는 회사에서 지급한 보온병을 들고 다닌다.
여름엔 차가운 물, 겨울엔 따뜻한 물을 담아가지고 다닌다.
그런데 전에 같이 일했던 남자 캐디가 보온병을 두 개 들고 다니는 것이다.
그래서 왜 두 개나 들고 다니냐고 물었더니
여름이건, 겨울이건 차가운 물과 뜨거운 물을 두개 담아가지고 다닌다는 것이다.
왜 그러냐고 물으니,
차가운 물을 가지고 나가면 뜨거운 물을 찾을 때가 있고,
뜨거운 물을 가지고 나가면 차가운 물을 찾을 때가 있는데
말할 때 없으면 그거 가지고도 트집을 잡는다고 하는 것이다.
정말 지랄도 풍년이라고 말하고 싶었다.
그렇게 필요한 물이면 개인적으로 담아 다녀야지
그런 것까지 일일이 제공해야 하는 게 나는 이해가 가지 않는다.
그러다 문제라도 생기면 분명 또 캐디 탓을 할게 뻔한데 말이다.
그린피, 카트비는 다 회사가 가져가는데
온갖 서비스는 캐디가 하니 캐디피 15만 원에 그 모든 게 포함되어 있는지 의문이다.
가끔 믹스커피를 찾는 고객님들이 있다.
마치 믹스커피를 맡겨놓은 것처럼 찾고, 없으면 그것도 안 들고 다니냐며 핀잔을 준다.
캐디는 고객에게 먹는 것을 제공할 수 없다.
그러다 탈이 나면 또 캐디에게 책임을 묻기 때문이다.
커피가 마시고 싶으면 그늘집에서 사 먹으면 된다.
본인이 믹스커피를 좋아하면 들고 다니면 된다.
문제가 될 만한 행동은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남자캐디니 여자캐디니 그런 걸로 트집 잡을 시간에 볼이나 제대로 쳤으면 한다.
직장담화를 쓰면서 옛날 일을 회상하다 보면 화가 난다.
글이 감정적으로 쓰여서 내 글을 읽는 사람에게
눈살을 찌푸리게 할 수도 있다.
하지만 나도 속마음을 한번 털어놓고 싶었다.
20년 동안 참았으니 이 정도는 할 수 있지 않나?
이제 캐디를 지원하는 20~30대는 많이 없다.
요즘 MZ세대 캐디들은 할 말 안 할말 다해서
클레임도 많이 들어온다고 하는데 속이라도 후련할 것 같다.
예전에 한 고객이 "언니~ 나 볼하나만 던져줘~"라고 말했는데
MZ세대 캐디가 "저한테 볼 맡겨 놓으셨어요"라고 말했다고 한다.
아마 나처럼 오래 캐디를 했던 사람은 빠른 진행을 위해
주머니에 스페어 볼을 하나씩 가지고 다닐 것이다. 세컨 OB나 해저드에 빠졌을 때
고객이 볼을 가지러 카트로 가는 일 없이 바로 진행하기 위해서다.
그렇다고 내가 준 볼을 고객이 다시 돌려주는 건 아니니까 그 MZ캐디가
그런 말을 하는 건 당연할 수도 있다.
고객들은 불친절하다는 말로 컴플레인을 하겠지만 사실은 맞는 말 아닌가.
그런 예는 수도 없이 많다. 분위기 싸해질까 하지 못했던 말들.
남자 캐디들은 더 할 말이 많을 것이다.
나이가 많건 적건 반말을 하고, 하대를 하는 고객들.
반말은 왜 하는 것일까? 언제 봤다고? 내 나이도 모르면서?
남자캐디들 중에는 프로라이선스를 가진 사람도 있고,
라이선스는 없지만 볼을 잘 치는 사람도 있다.
골프를 좋아해서 캐디를 시작한 사람도 많아서 티칭도 잘해준다.
얼마든지 기분 좋게 라운딩을 즐길 수 있다.
캐디가 남자인지 여자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그런 걸 보는 사람들은 골프를 즐기러 온 사람들이 아니다.
이 글을 읽고 있는 사람 중에 골퍼가 있다면
캐디는 그냥 캐디로 봐주었으면 한다.
나에게 코스 정보를 자세하게 알려줄 내 편이라고 생각해 주길 바란다.
남자 캐디가 나와도 친절하게 대해주었으면 좋겠다.
캐디라는 직업을 하려고 하는 사람들이 점점 줄어든다고 한다.
특수직업종사자라 세금도 많이 내야 하고,
육체적으로 힘들지만 정신적으로는 몇 배 더 힘든 일이기 때문이다.
언제부터인지 신입교육을 못 본 것 같다.
새로 시작하는 캐디들 대부분은 남자 캐디고,
여자 캐디들은 개인사정에 따라경력자들이 골프장을 돌고 돈다.
어쩌면 나중에는 남자캐디만 남아 있을지도 모른다.
캐디라는 직종을 지켜내기 위해서는 매너 있는 골퍼들이 많아져야 한다.
골프라는 재미있는 스포츠를 다 같이 즐기는 좋은 골퍼들이 늘어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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